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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말라카 역사에 대하여

말레이시아 말라카는 1402년부터 1511년까지 번영했던 말라카 왕국이 있던 곳입니다. 말레이 반도 최초의 독립 국가로 간주되는 말라카 술탄국의 시작이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말레이시아의 역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 식민지의 역사 흔적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어서 많은 방문자들을 불러 모으는 역사적인 도시입니다.

말라카역사

말라카의 역사는 팔렘방(Palembang)의 왕자인 파라메스와라(Pawameswara)가 전쟁에 패해 도피한 곳입니다. 파라메스와라 왕자와 그의 추종자들은 1402년 즈음에 현재의 말라카로 이동하였습니다. 말라카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던 중 파라메스와라(Pawameswara)의 사냥개가 사슴을 위협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사냥개에게 물려 죽을 것만 같았던 사슴은 오히려 개를 밀어 강에 빠지게 함으로써 위험한 상황을 넘기게 됩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왕자는 사슴의 처지가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확신하고 이곳에 새로운 국가를 세울 것을 결단하게 됩니다. 그 국가가 말라카(Melaka) 왕국입니다.

▲파라메스와라 왕자가 말라카 왕국을 세웠다는 장소를 기리는 비

말라카강

▲파라메스와라 왕자의 개가 사슴에 쫒게 빠졌다는 말라카 강(Melaka River)

말라카는 지리적 장점으로 인해 중계무역이 성했던 곳입니다. 신생왕국임에도 불구하고 중계 무역 덕에 상당한 부를 빠른 시간에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군사력은 열세였던 바, 다른 나라들의 침략에 대비하는 방법으로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보호를 받는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분이 명나라 정화 장군입니다.

정화장군

▲말라카에 있는 정화(Cheng ho)장군 상

정화 장군은 말라카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분입니다. 지금도 말라카에 가면 정화 장군의 이름이 곳곳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지 발음으로는 '청호(Chong ho 또는 Cheng ho)'라고 쓰입니다.

▲Cheng ho Cafe

정화 장군이 배경에 있을 때 말라카는 이슬람교를 수용함에 따라 말레이반도와 자바섬을 아우르는 범 이슬람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말레이 반도와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화 장군이 죽고 난 뒤, 중국의 지원도 예전만 같지 못하게 되자 말라카는 서양의 식민지에 들어서게 됩니다.

크리스트교회, 네덜란드광장, 말라카

▲네덜란드 광장에 있는 크리스트 교회

1511년 포르투갈의 말라카 점령으로 말라카 왕국은 쇠퇴하게 됩니다. 말라카왕조는 포르투갈에 격렬히 저항했지만 결국 패망하게 됩니다. 이후 말레이지역 뿐 아니라 동남아 지역 전체가 유럽 열강의 식민지배 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말라카산티아고성문

▲1512년 포르투갈이 건설한 산티아고 성문

포르투갈 지배는 1641년 네덜란드가 말라카를 점령하면서 끝나게 됩니다. 네덜란드 지배는 포르투갈이 처음 말라카에 들어온지 130년 후입니다. 이후 네덜란드 지배는 140년 이상 이어졌습니다. 이후 영국과 식민지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싱가포르 이북 지역은 영국의 지배로 싱가포르 아래 지역은 네덜란드의 지배가 시작됩니다. 이 때부터 말레이시아 지역은 영국지배가 시작됩니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독립할 때까지 영국지배하에 있었습니다.

말라카성바울교회

▲성 바울 교회(St. Paul's Church)

우리나라도 일본의 식민지배 시대가 있었습니다. 동남아지역의 식민지 역사를 보면 동변상련이 느껴집니다. 더구나 말라카는 거의 500년이 넘는 시간을 식민지 지배를 당하며 살았습니다. 우리나라도 36년간 식민지를 당하면서 현재까지 그 영향을 무수히 받을진데, 말레이시아는 얼마나 큰 고통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요? 그리고 고유 전통을 계승하지 못하는 그 역사적 고통은 또 얼마나 클 지 가늠도 되지 않습니다.

▲성 바울 교회에서 내려다 본 말라카 전경

말레이시아 말라카는 이런 식민지 역사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을 여행하면 이 역사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주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